소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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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작품
기동전사 크로스 본 건담
기동무투전 G 건담
신기동전기 건담 W ~ Endless Waltz
기동신세기 건담 X
기동전사 건담 SEED Destiny
기동전사 건담 OO
마징카이저
UFO로보 그렌다이저
체인지 진 겟타 로보 ~ 세계 최후의 날
초수기신 단쿠가
머신로보 ~ 크로노스의 대역습
파사대성 단가이오
기동전함 나데시코 극장판 ~ The Prince of Darkness
반드레드
초중신 그라비온
기어전사 덴도
용자왕 가오가이가 ~ 진정한 용기
반프레스토 오리지날
SAGA 오리지날
SRW 外傳 FUTURE DREAM
제 1부 The Lost Generation
Stage 3. Rage of Aerok (1)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지구 연방이 존재했던 시절.
내츄럴과 코디네이터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것만큼이나 지구 연방과 쟈프트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티탄즈라는 지구 연방군 특수부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이 맡은 업무는 쟈프트가 건국되기 전 플랜트에 사는 코디네이터들을 감시하고 그들이 저지르는, 혹은 그들을 향한 테러행위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지만 티탄즈의 지휘부가 블루 코스모스의 일원들로 구성되었기에 그들의 임무는 조금씩 변질되어 갔다.
그땐 불똥하나만 튀어도 극한의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는데도 티탄즈는 코디네이터에 비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내츄럴을 위해 혹독한 방법으로 코디네이터들을 탄압했다.
코디네이터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집회가 열리면 누구보다 먼저달려가 그들을 탄압했고 지구 연방, 특히 블루 코스모스의 사주를 받아 코디네이터 중 핵심인사의 암살까지 담당하는 등 안 좋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지구 연방과 쟈프트의 전쟁이 터지게 되자 그들은 플랜트에 테러를 저지르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게 되었고 그런 티탄즈에 의해 생긴 끔찍한 비극이 바로 블러디 애로크 사건이었다. 애로크라는 이름의 플랜트에 핵공격을 감행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티탄즈는 쟈프트 뿐만 아니라 지구 연방의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블루 코스모스로 구성된 지휘부가 전원 영창행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지휘부 없이 표류하던 티탄즈를 지구 연방 붕괴 후, 재수립된 UN이 거두어져 지휘관으로는 존 하이넬 중령이 임명되어 UN 휘하 치안 유지 부대로 재편성 되었다.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 티탄즈였지만 존 하이넬 중령이 이전 티탄즈의 간부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티탄즈 부대 내의 어느 관사.
티탄즈에게 배속된 건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휘관인 존 하이넬을 비롯한 사령부가 UN이 설치된 뉴욕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티탄즈의 군세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기에 자연히 그들에게 주어진 관사 또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 내 존 하이넬의 집무실에 젊은 청년 장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피로 만든 듯한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가린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는 단정하게 입은 군복 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하이넬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티탄즈 제 7 MS 부대 소속 페이론 시미나트 소위입니다.”
페이론 시키나트 소위가 경례를 붙인 쪽에는 회색빛 머리카락에 초췌해보이는 외모, 그렇지만 누구보다 야심에 가득한 눈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는 페이의 경례를 받은 뒤 거두절미하고 페이가 해야 할 일 부터 알려주었다.
“귀관을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하이넬이 서류가 담긴 파일을 내밀자 페이는 얼른 다가가 파일을 받아들었다. 파일을 펼치니 티탄즈의 첩보원들이 보내온 어느 테러리스트 비밀 기지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있었다.
“제 5 플랜트, ‘제미니’의 35구역에 있는 난민 캠프가 로아의 비밀 기지였습니까?”
“그래, 용케도 그런 곳에 비밀 기지를 만들어놓았더군.”
“그럼 저희가 해야할 일은......”
“그곳을 소탕하게. 그것이 이번에 귀관이 수행해야할 미션이다, 시키나트 소위.”
페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반 티탄즈 조직 로아의 아지트가 발견되었는데 그 아지트는 난민 캠프로 위장하고 있다는 거였다. 페이는 이 난민 캠프로 모빌슈트 몇 기를 이끌고 가 말 그대로 소탕하고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다.
로아의 비밀 아지트를 소탕하라는 미션을 받은 페이는 냉정한 외모에 걸맞는 차가운 목소리로 하이넬에게 물었다.
“공격 대상은 테러리스트에게만 한정합니까?”
“귀관은 한눈에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구분할 수 있겠나?”
조금의 간격을 두지도 않고 하이넬이 바로 물어오자 페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답을 내놓았다.
“없습니다.”
“그럼 알아서 하게.”
“알겠습니다.”
이제까지의 내용이 2시간 전의 상황이었다. 바로 페이가 하이넬에게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의 대화 내용이었다. 페이는 자신의 모빌슈트에 타고 감정이 없는 눈으로 난민 캠프를 내려다보았다. 난민 캠프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모빌슈트에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자신의 아이를 끌어안은 듯한 한 여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본 페이는 차갑게 읊조렸다.
“쏴라.”
그리고 난민 캠프를 둘러싼 티탄즈의 모빌슈트들은 일제히 난민캠프를 향해 총알을 토해냈다.
“무슨 소리야! 그리버가 티탄즈로 보내졌다니!”
위너 가.
지구권 최고의 갑부 집안이며 최대 MS 생산 공장인 세븐 크로닉스를 소유한 재벌계의 거두였다. 이런 위너가의 본가에는 거대한 MS 공장이 있었는데 그 공장에서 굉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앳된 외모에 약간 탈색된 듯한 블로드, 그리고 앳된 외모에 잘 어울리는 소녀다운 몸매를 가진 작업복 차림의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내지른 소리였다. 그녀의 외침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 저도 막아보려고 했지만......”
“했지만?”
“가, 가주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리버를 티탄즈로 보내라고......”
“뭐야, 오빠가?”
이 여자의 이름은 아테나 아리스 위너. 현 위너 가의 가주인 카로트 라디스 위너의 여동생이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집에만 있는 터라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다. 빼어난 미남인 카토르의 여동생 답게 그녀 역시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닌 MS 마이스터-MS를 전문적으로 설계, 제작하는 직업-라는 점이었다. 몸이 약한 터라 집에만 있다 보니 자연스레 MS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위너가의 공장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결국 그녀가 MS 제작자로, 기술자로 엄청난 실력을 얻게 된 것은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평소 전쟁이 싫어하고 사람 죽는 것과 죽이는 걸 혐오하는 터라 전쟁을 확산시키고 사람을 죽이고 또한 죽게 만드는 MS를 싫어하는 게 당연한 이치지만 그녀는 MS 제작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이것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 그녀가 말하고 있는 그리버는 형식번호 ‘GAT-X127G Griver’로 얼마 전 아테나에 의해 롤 아웃된 세븐 크로닉스의 최신예 MS였다. 세븐 크로닉스에서 개발한 신형 엔진이 탑재되었고 아테나가 실험용으로 제작했던 무장들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그리버를 무엇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테나의 인격이 카피된 그리버의 보조 프로그램 ‘제니’의 존재였다. 파일럿의 백업을 담당하며 파일럿이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게 그리버를 제어하는 그리버의 메인 컴퓨터 ‘제니’는 이제까지 모빌슈트에 없었던 매우 특별한 기능이었다.
그런데 그 그리버가 티탄즈로 보내졌다니 아테나는 오빠 카토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가 왜! 그리버는 내꺼란 말이야! 내 MS는 어디에도 안 팔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버는 티탄즈로 옮겨졌습니다.”
“쳇!”
아테나는 작업복 주머니에 넣어둔 그리버의 시동키를 꺼내들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이게 없으면 그리버는 기동도 되지 않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다.
좀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그리버가, ‘제니’가 전장을 누비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리버가 전장을 누비지 않게 막는 방법은 단 하나...... 그걸 가지고 돌아오는 일 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그리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그리버를 되찾아오겠어!”
검은 양복의 남자가 아테나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고집에 있어선 오빠인 카토르도 당해내지 못하는 게 바로 아테나였다. 결국 아테나는 그날로 티탄즈에게로 보내진 그리버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서고 말았다. 이때까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일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늦었군.”
폐허가 되어버린 난민 캠프를 보며 한 소년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푸른색 눈동자에 가득 들어온 처참한 캠프의 모습, 피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그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주먹을 있는 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애도라도 하듯 하늘에선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참담한 광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이 광경을 보며 소년은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시바 미도우. 올해 19세로 쟈프트 쪽 기록을 보면 코디네이터로 분류되는 자였다. 싸늘한 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와 좌우로 살짝 뻗친 흑색 머리카락, 그리고 상아와 같은 하얀 피부는 그의 얼굴에 서려있는 차가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시바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서 있던 한 소녀는 이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단발머리를 한 소녀의 머리카락은 소녀의 얼굴을 가렸고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에선 빗방울이 아닌 다른 종류의 물방울들이 흘러내렸다.
“미, 믿을 수 없어...... 어, 어떻게 이런 짓을...... 믿을 수가 없어......”
“......티파니.”
시바가 티파니라고 부른 단발머리의 소녀는 그렇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흐느끼더니 한참 만에 눈물로 가득한 얼굴을 들고 시바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 티탄즈는 블러디 애로크 사건으로도 느끼는 게 없는 인간들인 거야? 같은 인간인데...... 같은 인간이잖아!”
“......”
티파니의 물음에 시바는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냥 멀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시바는 시선을 참혹한 난민 캠프 쪽으로 돌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코디네이터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 특히나 티탄즈, 그리고 블루 코스모스는 그런 식의 사고를 하는 놈들로 가득한 곳이야.”
“시바......”
시바의 음성에 가득한 분노를 느끼고 티파니는 흐느낌을 멈추었다.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지만 몸에 닿는 비를 모두 증발이라도 시키려는 듯 시바의 몸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 정말이지......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군.”
R.O.A. Rage of Aerok...... 통칭 로아.
로아는 티탄즈가 저지른 블러디 애로크 사건의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만든 반 티탄즈 단체였다. 복수심에 불탔던 로아는 처음에는 티탄즈를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했다. 블러디 애로크 사건으로 전원 영창에 간 티탄즈의 간부들을 끝까지 찾아내 전부 처형해 버릴 정도로 로아의 원한과 복수심은 크고 깊었다.
그런 로아의 복수심을 쟈프트는 적절히 이용했다. 그래서 지구 연방과의 전쟁에서 로아는 일반 군부대가 할 수 없는 지저분한 일들을-주요 인물 암살이나 테러 공작 등- 맡아 많은 활약을 했다. 그 당시 로아는 티탄즈를 창설한 지구 연방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 쟈프트의 편을 들어 전쟁에 참가했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야킨 두 에 전투를 끝으로 지구 연방과의 전쟁이 끝나고 지구 연방이 유니온, AEU, 인류 혁신 연맹으로 갈라지자 로아에겐 블러디 애로크 사건에 대한 책임을 돌릴 대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티탄즈는 지구 연방이 사라진 다음에도 해산되지 않고 UN산하로 들어가 부대가 존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로아의 활동은 다시 시작되었다.
티탄즈의 부대가 있는 군기지에 테러를 감행하고 군수물품을 습격하고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등 로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티탄즈를 공격하자 이에 티탄즈는 ‘피는 피로 갚는다’라는 논리를 내세워 로아의 아지트를 찾아내 공격하고 로아의 후원자를 알아내 그들을 암살하는 등 로아와 티탄즈의 싸움은 점점 과격해져가고 있었다.
이 싸움은 로아는 티탄즈를 증오하고, 티탄즈는 로아를 경멸하는 현 상황이 끝나지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로아는 플랜트에 각 지부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중심이 되는 플랜트는 제 플랜트 ‘다빈치’였다. 로아의 특성상 ‘다빈치’지부의 지부장이 로아의 행동을 결정하고 앞으로 어떤 작전을 펼쳐나갈 것인지를 판단하는 사령관이 되었다. 현재 로아의 사령관이자 ‘다빈치’ 지부의 지부장은 제임스 스코트라는 26세의 젊은이였다.
10년전 블러디 애로크 사건의 생존자로 애로크가 티탄즈에 의해 핵공격을 당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를 1인승 비상용 탈출 캡슐에 태워 탈출시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를 잃고 살아왔기 때문에 스코트가 로아의 일원이 되는 건 그에게 있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차분한 갈색머리와 뿔테안경으로 인해 유약하게 보이는 얼굴을 가졌지만 사람은 외모로 평가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3년째 로아를 이끌어온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제임스 스코트라는 이름은 로아에게 있어선 희망의 상징이 되었고 티탄즈에겐 악몽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플랜트 ‘다빈치’에 위치란 로아의 아지트.
로아 플랜트 지부 아지트에 들어오기 위해선 삼엄한 경계와 여러 겹 되어 있는 보안 시스템을 통과해야만 했다. 특히 지부장이자 로아의 사령관인 제임스 스코트를 만나기 위해선 더한 보안 체계를 통과해야만 했다.
이런 보안 체계를 아무런 페널티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로아를 통틀어 딱 3명이 있었는데 그중 시바 미도우라는 19세 소년과 티파니 크로스로드라는 19세의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바 미도우는 올해 19세, 코디네이터로 로아에 들어온 진 이제 2년이 되어가는 신병에서 막 고참병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병사였다. 쟈프트의 엘리트들만 다닐 수 있는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던 사관생도였는데 스코트가 주도한 로아의 작전에서 스코트를 구해준 게 인연이 되어 로아에 들어오게 되었다. 솔직히 그는 블러디 애로크 사건에 관련이 없었지만 티탄즈의 혹독한 탄압이나 비인간적인 행위에 크게 분노해 로아에 참가한 병사였다.
티파니 크로스로드 역시 올해 19세. 스코트와 같이 블러디 애로크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소녀였다. 평범한 성인으로 자라주길 바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어머니를 죽인 티탄즈를 용서할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로아에 들어오게 되었다. 로아의 공작원이지만 평상시에는 ‘다빈치’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기에 주위 사람은 그녀가 로아의 대원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플랜트 ‘제미니’에서 벌어진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시바와 티파니를 스코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맞아주었다.
“‘제미니’에서 있었던 일은 들었다. 정말 유감이군.”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게 제임스 스코트라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시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티파니는 정말 화가 났는지 스코트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로 제미니 지부가 완전히 붕괴되었잖아요. 그리고...... 민간인들도 많이 희생되었어요!”
“나도 알아. 잘 알고 있어, 티파니. 하지만 티탄즈는 이번 일을 로아에 대한 소탕 작전이었을 뿐이라고 언론 조작을 할 거야. 티탄즈의 작전에서 죽은 사람은...... 전부 테러리스트로 위장되겠지.”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우리도 언론에 공표하면 안되나요?”
티파니가 재차 말하자 스코트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언론이 없잖아.”
“제 사촌 언니가 JNN의 기자에요. 언니에게 부탁하면......”
티파니가 사촌 언니를 언급하자 스코트는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나도 알고 있어. 키누에 크로스로드 씨를 말하는 거지? 그 사람이면 믿을 만하지. 하지만 JNN은 믿을 수 없는 방송국이야.”
티파니의 사촌 언니 키누에는 믿을 수 있지만 그녀가 다니는 방송국 JNN은 믿을 수 없다는 얘기에 시바는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은 믿지만 단체는 믿을 수 없다라...... 슬프군.”
티파니가 다시 스코트에게 뭔가 말하려는 순간 스코트의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갈색 머리에 냉정한 얼굴과 그보다 더 차가운 눈을 가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무뚝뚝하게 말을 꺼냈다.
“스코트, 에이전트로 부터 연락이다.”
시바를 포함해 모든 로아의 대원들이 스코트를 ‘사령관’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지금 스코트의 집무실에 들어온 이 남자만은 스코트를 이름으로 불렀다.
이 남자의 이름은 히이로 유이. 로아가 막 결성했을 당시 로아에 가담한 멤버로 잠입,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등 다방면에서 큰 활약을 해온 로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스코트가 사령관으로 추대되기 전, 전임 사령관이 티탄즈에게 사살되었을 때 가장 유력한 차기 사령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자신은 그런 중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며 스코트에게 사령관 지위를 양보하고 자신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모빌 슈트 조종 실력도 우수해 양산형 모빌 슈트를 타고도 특정 파일럿 전용으로 만든 모빌 슈트를 이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히이로가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말을 하자 스코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물었다.
“티탄즈의 새로운 움직임이라도 잡은 건가?”
“아마도.”
“알았네. 시바, 티파니, 너희도 따라오도록.”
스코트는 시바와 티파니를 데리고 히이로와 함께 브리핑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다란 메인 모니터가 있는 작은 방에 들어선 네 사람은 브리핑 룸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여자였는데 엷은 갈색 머리에 단호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가진 미인이었다. 그녀는 티파니 만큼이나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옷도 여성성은 전혀 강조하지 않은 투박한 남자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를 본 시바는 피식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루나, 오늘도 아저씨 옷인가?”
“남이사. 아저씨 옷을 입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티탄즈 놈들만 때려잡으면 되지.”
“그렇군.”
아저씨 옷을 입은 여자-루나 마키스라는 이름을 가졌다-의 핀잔을 들은 시바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그의 입을 닫게 만든 루나는 메인 모니터를 키면서 스코트에게 말했다.
“에이전트에게 들어온 최신 정보입니다, 사령관 님.”
“보고 있네.”
메인 모니터에 ‘Sound Only’라는 단어가 뜨더니 음성 변조된 에이전트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로아 여러분,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여러분들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고 음성변조를 한 점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언젠 안 그랬나? 새삼스럽게......”
에이전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불만스러웠는지 티파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티탄즈가 새로운 모빌 슈트 2기를 주문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두 기 다 건담 생산 중지 조약에 위배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에이전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Sound Only만 떠있던 메인 모니터에 한 모빌 슈트의 설계도가 나타났다. 설계도만 봐도 날씬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가진 모빌슈트로 보였는데 무장을 보니 상당히 시험적인 무장들이 많아보였다. 양손에 장비한 와이어를 포함해 양쪽 허리에 장비한 피스톨 타입의 빔 라이플, 고출력 빔 샤벨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스커트 안쪽에 장비된 소형 미사일과 총과 검의 일체형 무기인 건 블레이드 ‘플레임 턴’이었다.
[이것이 형식번호 GAT-X127G 그리버. 세븐 크로닉스에서 만든 최신예 모빌슈트에요. MS 마이스터 아테나 라미아 위너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기체라 성능 보장은 확실합니다.]
“휴우~! 멋진데?”
그리버와 그리버가 보유한 무기에 대한 설계도를 본 시바는 탐난다는 듯 작게 휘파람을 불며 웃었고 그런 시바를 루나가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너무 경박하다는 뜻에서 노려본 것인데 시바는 이해하라는 뜻이 담긴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시바와 루나가 잠깐동안 무언의 의견충돌을 하고 있었던 동안 수수께끼의 에이전트가 새로운 모빌슈트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그리버에 비해 좀 투박하고 뚱뚱하다는 이미지가 느껴지는 모빌슈트였다. 거대한 실드와 함께 고출력 빔 샤벨 밖에 다른 무장이 없다는 게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티탄즈가 특주를 내 만든 모빌슈트입니다. 형식번호 GAT-X146A. 이름은 아직 안정해졌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라면서 에이전트는 화면에 이 모빌슈트의 전용 무기인 커다란 바주카의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모빌 슈트의 위험성은 바로 이 바주카입니다. 전용 바주카인 A-바주카인데...... 핵탄두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발이 아니라 두 발이 장비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이 모빌슈트에 핵탄주가 탑재된 바주카가 장비되어있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로아에게 있어 핵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물건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핵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로아의 대원들에겐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부분은 애로크에 가해진 핵공격의 피해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핵공격의 아픈 기억을 안겨준 티탄즈가 핵탄두를 무기로 쓰는 모빌슈트를 만들다니...... 스코트는 분노로 인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녀석들...... 정말 사람의 탈을 쓴 자들이 맞단 말인가?”
[이 두 모빌슈트는 대 로아 용으로 티탄즈가 특주를 내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버는 둘째치더라도 핵탄두가 탑재된 모빌슈트는 반드시 처리해야한다고 보여 집니다. 핵이란 두 번 다시 사용해선 안 될 끔찍한 병기니까요. 두 모빌슈트가 티탄즈에게 넘겨지는 시간과 장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부디 스코트 사령관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으로 에이전트와의 통신이 끊겼다. 에이전트와의 통신이 끝나면서 브리핑 룸의 불이 다시 들어왔지만 방 안 가득 들어찬 무거운 침묵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난 끝에 히이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별 수 없군. 저 두 모빌 슈트를 파괴하는 걸로 하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군.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핵탄두가 탑재된 모빌슈트만은 파괴하도록 해야 해.”
히이로의 뜻에 동감하며 스코트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루나가 말을 꺼냈다.
“흐음, 어떻게 하죠? 제 생각엔 소수 정예로 몇 명을 선발해 미션을 수행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스코트는 루나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형 모빌슈트가 넘어가는데 그 보안이 허술할 리 없었고 경계가 삼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 곳을 힘으로 뚫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로아의 전력이 티탄즈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로아가 보유한 모빌슈트가 티탄즈의 모빌슈트에 비해 구식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소수 정예로 팀을 구성해 모빌 슈트를 파괴하는 것 뿐이었다. 그 편이 티탄즈로 잠입하기도 편했고 미션 실패 시 로아가 입을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내 생각도 같아. 내가 시바, 티파니와 함께 다녀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히이로가 말하자 시바와 티파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가겠다는 뜻을 표했고 이제 스코트가 승낙하기만 하면 끝인 상황이었는데 이때 가만히 있던 루나가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만 히이로. 왜 날 빼는 거야? 시바나 티파니보단 내가 더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많잖아!”
“저번 미션에서 입은 부상이 낫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 작전에 투입되고 싶으면 먼저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어놔.”
차가우리만큼 냉정한 히이로의 말에 루나는 발끈하여 그에게 뭐라 더 말하려고 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가던 이 둘의 싸움을 말린 건 다름 아닌 스코트였다.
“이런 미션에선 언제나 히이로의 판단이 맞다는 게 증명되어 있지. 이번에도 그를 믿고 그에게 맡겨보는 게 어때, 루나?”
“......쳇!”
스코트가 설득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듯 루나는 시바와 티파니, 특히 티파니 쪽을 더 매섭게 노려보고는 브리필 룸 밖으로 나갔다. 티파니도 눈치가 있는 사람인지라 루나의 눈초리에서 꽤 많은 걸 느껴 시바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보단 내가 미션에 투입된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신경 쓸 거 없어. 넌 네 역할에 충실하면 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 간에 말이지.”
그렇게 답한 시바는 메인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돌려 아직도 작은 창 상태로 떠있는 티탄즈의 신형 모빌슈트 설계도를 보았다. 그리고 뭔가 갈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리버를 오랫동안 보았다. 꽤 오랫동안......
플랜트가 모두 쟈프트의 소유이고 쟈프트는 공식적이 아닌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티탄즈를 배척하고 있기 때문에 티탄즈는 플랜트의 치안을 담당한다는 임무가 무색하게 플랜트 내에 작은 기지하나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에 관해서 티탄즈의 사령관 존 하이넬이 몇번이나 UN과 쟈프트에 항의했지만 UN는 미묘한 국제정세 때문에, 쟈프트는 티탄즈를 미워하는 자국내 국민 여론 때문에 그의 항의를 묵살하고 있었다.
그래서 티탄즈는 임시방편으로 플랜트가 건조되기 전 사람들이 거주했던 콜로니, 지구 연방과 쟈프트의 전쟁 때에는 주요 군사 거점기지로 쓰였던 몇몇 우주정거장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었다. 이중 지구 연방과 쟈프트가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제 18 군사 위성 기지 ‘헬레네’는 티탄즈의 사령부가 소재해있는 곳으로 티탄즈에서도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티탄즈 휘하 병력 대부분이 결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헬레네’는 단순한 군사 기지 이상의 티탄즈의 병사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나 오락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곳으로 어지간한 플랜트와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헬레네’ 내부의 한 술집. 술집의 이름은 디오니소스였지만 누구도 그렇게 긴 술집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냥 대충 줄여서 ‘디오’라고만 불렀지 ‘디오니소스’라고 제대로 발음해주는 병사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많은 티탄즈 병사들 중에 페이론 시키나트 소위는 예외였다. 그는 디오를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주는 몇 안되는 티탄즈 병사였다.
디오니소스의 바에서 혼자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페이에게 두 명의 남녀가 다가왔다. 한 명은 붉은색 머리카락에 도발적인 몸매, 그리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얼굴을 가진 여자였고 다른 한 명은 검은 머리에, 작지만 단단한 체구, 그리고 야비와 비열 사이를 오가는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 중 여자 쪽에서 먼저 페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기 들었어. 로아의 아지트를 박살냈다며?”
“......”
여자의 물음에 페이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잔에 담긴 마티니를 마셨고 잔을 내려놓는 페이의 눈에 그녀의 군복 상의에 새겨진 이름 ‘에레나 바우어’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에레나는 페이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자 그녀와 같이 온 남자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녀의 눈짓을 받은 남자-휴가 타가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건들건들거리며 페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로아의 아지트가 난민 수용소여서 민간인도 다수 있었다던데......”
“......그런 거엔 관심 없다.”
페이가 이런 대답을 할 거란 걸 예상했는지 에레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크흐흐...... 역시 냉혈한. 넌 몸속의 피까지 초저온일 거야.”
“......칭찬으로 듣지.”
그렇게 대답하며 페이는 남은 마티니를 전부 입에 털어넣었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술맛이 떨어졌기 때문에 대충 술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생각한 것이다. 막 주머니를 뒤져 술값을 내려던 페이는 타가야가 하는 말에 술값을 내려던 걸 멈추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페이를 멈추게 한 타가야의 말은 바로 이거였다.
“근데 소식 들었어? 신형 모빌슈트에 대한 거......”
티탄즈의 사령관 존 하이넬의 집무실.
호방하고 무인다운 기개가 넘치는 군인은 아니었지만 존 하이넬은 그런 군인에게 없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바로 눈빛. 존 하이넬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기에 체중도 많이 나가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마른 사람에게 붙는 이런저런 별명들이었지만 그런 별명을 그에게 붙인 사람은 그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구 연방과 쟈프트의 전쟁 때 냉혹한 전법으로 수많은 코디네이터 병사들을 지옥으로 내던져버린 그는 그때와 같은 싸늘한 눈빛을 한 채 자신의 데스크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 장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젊은 여성 장교의 이름은 힐데가르트 하이넬. 하이넬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자 아버지의 기질과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티탄즈의 핵심 간부였다. 어머니를 어려서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한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인이 되었는데 ‘역시 낼혈한 하이넬의 딸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섭고 냉혹한 전술을 많이 사용해 적군으로부터 ‘마녀’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모는 어머니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그녀에게 정신없이 구혼하는 자들이나 남모르게 사모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30대에 가까운 나이 28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여성의 평균 결혼 적령기는 25세임-그녀는 아직도 싱글이었다.
힐데는 잘생긴 얼굴에 한 점의 감정 변화도 없이 하이넬을 향해 서류가 담긴 결재파일을 내밀며 말했다.
“시키나트 소위의 소탕작전은 예상대로 처리했습니다. 이건 시키나트 소위가 작성한 경위서입니다.”
“그런가? 로아의 또 다른 아지트 수색은?”
힐데가 내민 파일을 받아들며 하이넬은 그녀에게 되물었고 힐데는 아버지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정보부에서 요원들을 풀어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곧 다른 아지트를 발견해낼 겁니다.”
“로아의 또 다른 아지트를 찾는 것도 좋지만 사냥감의 꼬리만 쫓아다녀선 사냥감을 잡을 수 없지. 머리를 날려야해.”
힐데가 아둔하지 않은 이상 하이넬의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로아의 리더 제임스 스코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를 잡아야 로아를 끝장낼 수 있지.”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힐데는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정보부에 제임스 스코트 수색에 관한 지시를 해놓겠습니다.”
힐데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하이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건담’들은 어떻게 되었나?”
“아, 그리버라는 모빌슈트를 말하는 거야? 꽤 괜찮아 보이던데?”
남들보다 신형 모빌슈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타가야는 에레나가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버도 굉장하지만 또 다른 모빌슈트가 더 대단한 녀석이야.”
“어째서지?”
대단한 녀석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긴 페이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타가야는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페이와 에레나에게 말했다.
“핵이 탑재된 모빌슈트거든.”
“핵? 뉴트론 재머 캔슬러를 말하는 건가?”
“크크큭...... 순진하긴. 핵은 동력으로 쓰는 것보다 무기로 쓸 때 더 위력이 넘치는 물건인 거 몰라?”
핵을 무기로 쓴다는 말에 페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늘 포커페이스인 페이가 표정이 바뀌자 타가야는 왠지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어 계속 떠벌려댔다.
“GAT-X146A. 아직 이름은 안정해졌지만 개발시 코드네임은 ‘뉴클리어’ 전용무기 A-바주카로 적에게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는 모빌슈트지. 이게 있으면 플랜트를 일격에 날려버리는 것도 꿈은 아니라고.”
“두 대 모두 롤 아웃되어 ‘헬레네’기지로 이송중입니다.”
신형 모빌슈트가 모두 ‘헬레네’기지로 이송중이라는 말에 하이넬은 마음을 놓았다. 마음이 놓이면서 그의 머릿속엔 세븐 크로닉스의 회장이자 위너 가의 가주인 카토르 라디스 위너를 만나서 핵병기를 사용하는 모빌슈트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위너 가의 가주 카토르와 단독으로 만난 하이넬은 자신이 원하는 모빌슈트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했고 카토르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지금에 와선 카토르의 조건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원하는 모빌슈트를 얻었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보부가 알아낸 첩보에는 세븐 크로닉스의 최신 모빌슈트가 로아에 흘러들어가는 거 같다며 위너 가와 로아가 손을 잡은 게 아니냐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마냥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힐데가르트 하이넬 대위.”
“예.”
“귀관은 지금 즉시 ‘헬레네’ 기지로 가게나. 가서 신형 모빌슈트가 제대로 도착했는지 모빌슈트의 결함이나 장비가 없는 것이 없는지 확실히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힐데는 거수경례를 붙이곤 그대로 뒤돌아서서 하이넬의 집무실을 나갔다. 힐데가 집무실을 나가자 하이넬은 곧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후후후...... 이걸로 우리 티탄즈에게 더욱 큰 힘이 생기겠지. 크크큭......”
“사령관이 어이없는 모빌슈트를 만들어냈군.”
두 잔째 마티니를 마시며 페이는 그렇게 말했다. 페이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에레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티탄즈에게 힘이 필요하단 소리지.”
타가야의 말에 페이는 세 잔째 마티니가 자신의 앞에 놓이는 걸 보고 물끄러미 잔에 담긴 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잔을 들더니 잔에 담긴 술을 한모금 마시곤 다시 잔을 바라보았다.
“힘...... 인가?”
투 비 컨티뉴드......
기동전사 크로스 본 건담
기동무투전 G 건담
신기동전기 건담 W ~ Endless Waltz
기동신세기 건담 X
기동전사 건담 SEED Destiny
기동전사 건담 OO
마징카이저
UFO로보 그렌다이저
체인지 진 겟타 로보 ~ 세계 최후의 날
초수기신 단쿠가
머신로보 ~ 크로노스의 대역습
파사대성 단가이오
기동전함 나데시코 극장판 ~ The Prince of Darkness
반드레드
초중신 그라비온
기어전사 덴도
용자왕 가오가이가 ~ 진정한 용기
반프레스토 오리지날
SAGA 오리지날
SRW 外傳 FUTURE DREAM
제 1부 The Lost Generation
Stage 3. Rage of Aerok (1)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지구 연방이 존재했던 시절.
내츄럴과 코디네이터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것만큼이나 지구 연방과 쟈프트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티탄즈라는 지구 연방군 특수부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이 맡은 업무는 쟈프트가 건국되기 전 플랜트에 사는 코디네이터들을 감시하고 그들이 저지르는, 혹은 그들을 향한 테러행위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지만 티탄즈의 지휘부가 블루 코스모스의 일원들로 구성되었기에 그들의 임무는 조금씩 변질되어 갔다.
그땐 불똥하나만 튀어도 극한의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는데도 티탄즈는 코디네이터에 비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내츄럴을 위해 혹독한 방법으로 코디네이터들을 탄압했다.
코디네이터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그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집회가 열리면 누구보다 먼저달려가 그들을 탄압했고 지구 연방, 특히 블루 코스모스의 사주를 받아 코디네이터 중 핵심인사의 암살까지 담당하는 등 안 좋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지구 연방과 쟈프트의 전쟁이 터지게 되자 그들은 플랜트에 테러를 저지르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게 되었고 그런 티탄즈에 의해 생긴 끔찍한 비극이 바로 블러디 애로크 사건이었다. 애로크라는 이름의 플랜트에 핵공격을 감행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티탄즈는 쟈프트 뿐만 아니라 지구 연방의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블루 코스모스로 구성된 지휘부가 전원 영창행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지휘부 없이 표류하던 티탄즈를 지구 연방 붕괴 후, 재수립된 UN이 거두어져 지휘관으로는 존 하이넬 중령이 임명되어 UN 휘하 치안 유지 부대로 재편성 되었다.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 티탄즈였지만 존 하이넬 중령이 이전 티탄즈의 간부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티탄즈 부대 내의 어느 관사.
티탄즈에게 배속된 건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휘관인 존 하이넬을 비롯한 사령부가 UN이 설치된 뉴욕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티탄즈의 군세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기에 자연히 그들에게 주어진 관사 또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 내 존 하이넬의 집무실에 젊은 청년 장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피로 만든 듯한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가린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는 단정하게 입은 군복 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하이넬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티탄즈 제 7 MS 부대 소속 페이론 시미나트 소위입니다.”
페이론 시키나트 소위가 경례를 붙인 쪽에는 회색빛 머리카락에 초췌해보이는 외모, 그렇지만 누구보다 야심에 가득한 눈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는 페이의 경례를 받은 뒤 거두절미하고 페이가 해야 할 일 부터 알려주었다.
“귀관을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하이넬이 서류가 담긴 파일을 내밀자 페이는 얼른 다가가 파일을 받아들었다. 파일을 펼치니 티탄즈의 첩보원들이 보내온 어느 테러리스트 비밀 기지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있었다.
“제 5 플랜트, ‘제미니’의 35구역에 있는 난민 캠프가 로아의 비밀 기지였습니까?”
“그래, 용케도 그런 곳에 비밀 기지를 만들어놓았더군.”
“그럼 저희가 해야할 일은......”
“그곳을 소탕하게. 그것이 이번에 귀관이 수행해야할 미션이다, 시키나트 소위.”
페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반 티탄즈 조직 로아의 아지트가 발견되었는데 그 아지트는 난민 캠프로 위장하고 있다는 거였다. 페이는 이 난민 캠프로 모빌슈트 몇 기를 이끌고 가 말 그대로 소탕하고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다.
로아의 비밀 아지트를 소탕하라는 미션을 받은 페이는 냉정한 외모에 걸맞는 차가운 목소리로 하이넬에게 물었다.
“공격 대상은 테러리스트에게만 한정합니까?”
“귀관은 한눈에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구분할 수 있겠나?”
조금의 간격을 두지도 않고 하이넬이 바로 물어오자 페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답을 내놓았다.
“없습니다.”
“그럼 알아서 하게.”
“알겠습니다.”
이제까지의 내용이 2시간 전의 상황이었다. 바로 페이가 하이넬에게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의 대화 내용이었다. 페이는 자신의 모빌슈트에 타고 감정이 없는 눈으로 난민 캠프를 내려다보았다. 난민 캠프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모빌슈트에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자신의 아이를 끌어안은 듯한 한 여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본 페이는 차갑게 읊조렸다.
“쏴라.”
그리고 난민 캠프를 둘러싼 티탄즈의 모빌슈트들은 일제히 난민캠프를 향해 총알을 토해냈다.
“무슨 소리야! 그리버가 티탄즈로 보내졌다니!”
위너 가.
지구권 최고의 갑부 집안이며 최대 MS 생산 공장인 세븐 크로닉스를 소유한 재벌계의 거두였다. 이런 위너가의 본가에는 거대한 MS 공장이 있었는데 그 공장에서 굉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앳된 외모에 약간 탈색된 듯한 블로드, 그리고 앳된 외모에 잘 어울리는 소녀다운 몸매를 가진 작업복 차림의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내지른 소리였다. 그녀의 외침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 저도 막아보려고 했지만......”
“했지만?”
“가, 가주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리버를 티탄즈로 보내라고......”
“뭐야, 오빠가?”
이 여자의 이름은 아테나 아리스 위너. 현 위너 가의 가주인 카로트 라디스 위너의 여동생이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집에만 있는 터라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다. 빼어난 미남인 카토르의 여동생 답게 그녀 역시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닌 MS 마이스터-MS를 전문적으로 설계, 제작하는 직업-라는 점이었다. 몸이 약한 터라 집에만 있다 보니 자연스레 MS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위너가의 공장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결국 그녀가 MS 제작자로, 기술자로 엄청난 실력을 얻게 된 것은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평소 전쟁이 싫어하고 사람 죽는 것과 죽이는 걸 혐오하는 터라 전쟁을 확산시키고 사람을 죽이고 또한 죽게 만드는 MS를 싫어하는 게 당연한 이치지만 그녀는 MS 제작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이것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 그녀가 말하고 있는 그리버는 형식번호 ‘GAT-X127G Griver’로 얼마 전 아테나에 의해 롤 아웃된 세븐 크로닉스의 최신예 MS였다. 세븐 크로닉스에서 개발한 신형 엔진이 탑재되었고 아테나가 실험용으로 제작했던 무장들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그리버를 무엇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테나의 인격이 카피된 그리버의 보조 프로그램 ‘제니’의 존재였다. 파일럿의 백업을 담당하며 파일럿이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게 그리버를 제어하는 그리버의 메인 컴퓨터 ‘제니’는 이제까지 모빌슈트에 없었던 매우 특별한 기능이었다.
그런데 그 그리버가 티탄즈로 보내졌다니 아테나는 오빠 카토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가 왜! 그리버는 내꺼란 말이야! 내 MS는 어디에도 안 팔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버는 티탄즈로 옮겨졌습니다.”
“쳇!”
아테나는 작업복 주머니에 넣어둔 그리버의 시동키를 꺼내들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이게 없으면 그리버는 기동도 되지 않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다.
좀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그리버가, ‘제니’가 전장을 누비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리버가 전장을 누비지 않게 막는 방법은 단 하나...... 그걸 가지고 돌아오는 일 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그리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그리버를 되찾아오겠어!”
검은 양복의 남자가 아테나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고집에 있어선 오빠인 카토르도 당해내지 못하는 게 바로 아테나였다. 결국 아테나는 그날로 티탄즈에게로 보내진 그리버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서고 말았다. 이때까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일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늦었군.”
폐허가 되어버린 난민 캠프를 보며 한 소년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푸른색 눈동자에 가득 들어온 처참한 캠프의 모습, 피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그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주먹을 있는 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애도라도 하듯 하늘에선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참담한 광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이 광경을 보며 소년은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시바 미도우. 올해 19세로 쟈프트 쪽 기록을 보면 코디네이터로 분류되는 자였다. 싸늘한 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와 좌우로 살짝 뻗친 흑색 머리카락, 그리고 상아와 같은 하얀 피부는 그의 얼굴에 서려있는 차가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시바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서 있던 한 소녀는 이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단발머리를 한 소녀의 머리카락은 소녀의 얼굴을 가렸고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에선 빗방울이 아닌 다른 종류의 물방울들이 흘러내렸다.
“미, 믿을 수 없어...... 어, 어떻게 이런 짓을...... 믿을 수가 없어......”
“......티파니.”
시바가 티파니라고 부른 단발머리의 소녀는 그렇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흐느끼더니 한참 만에 눈물로 가득한 얼굴을 들고 시바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 티탄즈는 블러디 애로크 사건으로도 느끼는 게 없는 인간들인 거야? 같은 인간인데...... 같은 인간이잖아!”
“......”
티파니의 물음에 시바는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냥 멀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시바는 시선을 참혹한 난민 캠프 쪽으로 돌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코디네이터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 특히나 티탄즈, 그리고 블루 코스모스는 그런 식의 사고를 하는 놈들로 가득한 곳이야.”
“시바......”
시바의 음성에 가득한 분노를 느끼고 티파니는 흐느낌을 멈추었다.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지만 몸에 닿는 비를 모두 증발이라도 시키려는 듯 시바의 몸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 정말이지......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군.”
R.O.A. Rage of Aerok...... 통칭 로아.
로아는 티탄즈가 저지른 블러디 애로크 사건의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만든 반 티탄즈 단체였다. 복수심에 불탔던 로아는 처음에는 티탄즈를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했다. 블러디 애로크 사건으로 전원 영창에 간 티탄즈의 간부들을 끝까지 찾아내 전부 처형해 버릴 정도로 로아의 원한과 복수심은 크고 깊었다.
그런 로아의 복수심을 쟈프트는 적절히 이용했다. 그래서 지구 연방과의 전쟁에서 로아는 일반 군부대가 할 수 없는 지저분한 일들을-주요 인물 암살이나 테러 공작 등- 맡아 많은 활약을 했다. 그 당시 로아는 티탄즈를 창설한 지구 연방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 쟈프트의 편을 들어 전쟁에 참가했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야킨 두 에 전투를 끝으로 지구 연방과의 전쟁이 끝나고 지구 연방이 유니온, AEU, 인류 혁신 연맹으로 갈라지자 로아에겐 블러디 애로크 사건에 대한 책임을 돌릴 대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티탄즈는 지구 연방이 사라진 다음에도 해산되지 않고 UN산하로 들어가 부대가 존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로아의 활동은 다시 시작되었다.
티탄즈의 부대가 있는 군기지에 테러를 감행하고 군수물품을 습격하고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등 로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티탄즈를 공격하자 이에 티탄즈는 ‘피는 피로 갚는다’라는 논리를 내세워 로아의 아지트를 찾아내 공격하고 로아의 후원자를 알아내 그들을 암살하는 등 로아와 티탄즈의 싸움은 점점 과격해져가고 있었다.
이 싸움은 로아는 티탄즈를 증오하고, 티탄즈는 로아를 경멸하는 현 상황이 끝나지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로아는 플랜트에 각 지부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중심이 되는 플랜트는 제 플랜트 ‘다빈치’였다. 로아의 특성상 ‘다빈치’지부의 지부장이 로아의 행동을 결정하고 앞으로 어떤 작전을 펼쳐나갈 것인지를 판단하는 사령관이 되었다. 현재 로아의 사령관이자 ‘다빈치’ 지부의 지부장은 제임스 스코트라는 26세의 젊은이였다.
10년전 블러디 애로크 사건의 생존자로 애로크가 티탄즈에 의해 핵공격을 당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를 1인승 비상용 탈출 캡슐에 태워 탈출시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를 잃고 살아왔기 때문에 스코트가 로아의 일원이 되는 건 그에게 있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차분한 갈색머리와 뿔테안경으로 인해 유약하게 보이는 얼굴을 가졌지만 사람은 외모로 평가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3년째 로아를 이끌어온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제임스 스코트라는 이름은 로아에게 있어선 희망의 상징이 되었고 티탄즈에겐 악몽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플랜트 ‘다빈치’에 위치란 로아의 아지트.
로아 플랜트 지부 아지트에 들어오기 위해선 삼엄한 경계와 여러 겹 되어 있는 보안 시스템을 통과해야만 했다. 특히 지부장이자 로아의 사령관인 제임스 스코트를 만나기 위해선 더한 보안 체계를 통과해야만 했다.
이런 보안 체계를 아무런 페널티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로아를 통틀어 딱 3명이 있었는데 그중 시바 미도우라는 19세 소년과 티파니 크로스로드라는 19세의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바 미도우는 올해 19세, 코디네이터로 로아에 들어온 진 이제 2년이 되어가는 신병에서 막 고참병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병사였다. 쟈프트의 엘리트들만 다닐 수 있는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던 사관생도였는데 스코트가 주도한 로아의 작전에서 스코트를 구해준 게 인연이 되어 로아에 들어오게 되었다. 솔직히 그는 블러디 애로크 사건에 관련이 없었지만 티탄즈의 혹독한 탄압이나 비인간적인 행위에 크게 분노해 로아에 참가한 병사였다.
티파니 크로스로드 역시 올해 19세. 스코트와 같이 블러디 애로크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소녀였다. 평범한 성인으로 자라주길 바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어머니를 죽인 티탄즈를 용서할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로아에 들어오게 되었다. 로아의 공작원이지만 평상시에는 ‘다빈치’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기에 주위 사람은 그녀가 로아의 대원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플랜트 ‘제미니’에서 벌어진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시바와 티파니를 스코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맞아주었다.
“‘제미니’에서 있었던 일은 들었다. 정말 유감이군.”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게 제임스 스코트라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시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티파니는 정말 화가 났는지 스코트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로 제미니 지부가 완전히 붕괴되었잖아요. 그리고...... 민간인들도 많이 희생되었어요!”
“나도 알아. 잘 알고 있어, 티파니. 하지만 티탄즈는 이번 일을 로아에 대한 소탕 작전이었을 뿐이라고 언론 조작을 할 거야. 티탄즈의 작전에서 죽은 사람은...... 전부 테러리스트로 위장되겠지.”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우리도 언론에 공표하면 안되나요?”
티파니가 재차 말하자 스코트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언론이 없잖아.”
“제 사촌 언니가 JNN의 기자에요. 언니에게 부탁하면......”
티파니가 사촌 언니를 언급하자 스코트는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나도 알고 있어. 키누에 크로스로드 씨를 말하는 거지? 그 사람이면 믿을 만하지. 하지만 JNN은 믿을 수 없는 방송국이야.”
티파니의 사촌 언니 키누에는 믿을 수 있지만 그녀가 다니는 방송국 JNN은 믿을 수 없다는 얘기에 시바는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은 믿지만 단체는 믿을 수 없다라...... 슬프군.”
티파니가 다시 스코트에게 뭔가 말하려는 순간 스코트의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갈색 머리에 냉정한 얼굴과 그보다 더 차가운 눈을 가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무뚝뚝하게 말을 꺼냈다.
“스코트, 에이전트로 부터 연락이다.”
시바를 포함해 모든 로아의 대원들이 스코트를 ‘사령관’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지금 스코트의 집무실에 들어온 이 남자만은 스코트를 이름으로 불렀다.
이 남자의 이름은 히이로 유이. 로아가 막 결성했을 당시 로아에 가담한 멤버로 잠입,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등 다방면에서 큰 활약을 해온 로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스코트가 사령관으로 추대되기 전, 전임 사령관이 티탄즈에게 사살되었을 때 가장 유력한 차기 사령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자신은 그런 중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며 스코트에게 사령관 지위를 양보하고 자신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모빌 슈트 조종 실력도 우수해 양산형 모빌 슈트를 타고도 특정 파일럿 전용으로 만든 모빌 슈트를 이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히이로가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말을 하자 스코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물었다.
“티탄즈의 새로운 움직임이라도 잡은 건가?”
“아마도.”
“알았네. 시바, 티파니, 너희도 따라오도록.”
스코트는 시바와 티파니를 데리고 히이로와 함께 브리핑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다란 메인 모니터가 있는 작은 방에 들어선 네 사람은 브리핑 룸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여자였는데 엷은 갈색 머리에 단호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가진 미인이었다. 그녀는 티파니 만큼이나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옷도 여성성은 전혀 강조하지 않은 투박한 남자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를 본 시바는 피식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루나, 오늘도 아저씨 옷인가?”
“남이사. 아저씨 옷을 입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티탄즈 놈들만 때려잡으면 되지.”
“그렇군.”
아저씨 옷을 입은 여자-루나 마키스라는 이름을 가졌다-의 핀잔을 들은 시바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그의 입을 닫게 만든 루나는 메인 모니터를 키면서 스코트에게 말했다.
“에이전트에게 들어온 최신 정보입니다, 사령관 님.”
“보고 있네.”
메인 모니터에 ‘Sound Only’라는 단어가 뜨더니 음성 변조된 에이전트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로아 여러분,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여러분들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고 음성변조를 한 점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언젠 안 그랬나? 새삼스럽게......”
에이전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불만스러웠는지 티파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티탄즈가 새로운 모빌 슈트 2기를 주문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두 기 다 건담 생산 중지 조약에 위배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에이전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Sound Only만 떠있던 메인 모니터에 한 모빌 슈트의 설계도가 나타났다. 설계도만 봐도 날씬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가진 모빌슈트로 보였는데 무장을 보니 상당히 시험적인 무장들이 많아보였다. 양손에 장비한 와이어를 포함해 양쪽 허리에 장비한 피스톨 타입의 빔 라이플, 고출력 빔 샤벨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스커트 안쪽에 장비된 소형 미사일과 총과 검의 일체형 무기인 건 블레이드 ‘플레임 턴’이었다.
[이것이 형식번호 GAT-X127G 그리버. 세븐 크로닉스에서 만든 최신예 모빌슈트에요. MS 마이스터 아테나 라미아 위너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기체라 성능 보장은 확실합니다.]
“휴우~! 멋진데?”
그리버와 그리버가 보유한 무기에 대한 설계도를 본 시바는 탐난다는 듯 작게 휘파람을 불며 웃었고 그런 시바를 루나가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너무 경박하다는 뜻에서 노려본 것인데 시바는 이해하라는 뜻이 담긴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시바와 루나가 잠깐동안 무언의 의견충돌을 하고 있었던 동안 수수께끼의 에이전트가 새로운 모빌슈트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그리버에 비해 좀 투박하고 뚱뚱하다는 이미지가 느껴지는 모빌슈트였다. 거대한 실드와 함께 고출력 빔 샤벨 밖에 다른 무장이 없다는 게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티탄즈가 특주를 내 만든 모빌슈트입니다. 형식번호 GAT-X146A. 이름은 아직 안정해졌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라면서 에이전트는 화면에 이 모빌슈트의 전용 무기인 커다란 바주카의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모빌 슈트의 위험성은 바로 이 바주카입니다. 전용 바주카인 A-바주카인데...... 핵탄두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발이 아니라 두 발이 장비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이 모빌슈트에 핵탄주가 탑재된 바주카가 장비되어있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로아에게 있어 핵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물건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핵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로아의 대원들에겐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부분은 애로크에 가해진 핵공격의 피해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핵공격의 아픈 기억을 안겨준 티탄즈가 핵탄두를 무기로 쓰는 모빌슈트를 만들다니...... 스코트는 분노로 인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녀석들...... 정말 사람의 탈을 쓴 자들이 맞단 말인가?”
[이 두 모빌슈트는 대 로아 용으로 티탄즈가 특주를 내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버는 둘째치더라도 핵탄두가 탑재된 모빌슈트는 반드시 처리해야한다고 보여 집니다. 핵이란 두 번 다시 사용해선 안 될 끔찍한 병기니까요. 두 모빌슈트가 티탄즈에게 넘겨지는 시간과 장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부디 스코트 사령관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으로 에이전트와의 통신이 끊겼다. 에이전트와의 통신이 끝나면서 브리핑 룸의 불이 다시 들어왔지만 방 안 가득 들어찬 무거운 침묵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난 끝에 히이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별 수 없군. 저 두 모빌 슈트를 파괴하는 걸로 하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군.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핵탄두가 탑재된 모빌슈트만은 파괴하도록 해야 해.”
히이로의 뜻에 동감하며 스코트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루나가 말을 꺼냈다.
“흐음, 어떻게 하죠? 제 생각엔 소수 정예로 몇 명을 선발해 미션을 수행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스코트는 루나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형 모빌슈트가 넘어가는데 그 보안이 허술할 리 없었고 경계가 삼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 곳을 힘으로 뚫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로아의 전력이 티탄즈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로아가 보유한 모빌슈트가 티탄즈의 모빌슈트에 비해 구식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소수 정예로 팀을 구성해 모빌 슈트를 파괴하는 것 뿐이었다. 그 편이 티탄즈로 잠입하기도 편했고 미션 실패 시 로아가 입을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내 생각도 같아. 내가 시바, 티파니와 함께 다녀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히이로가 말하자 시바와 티파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가겠다는 뜻을 표했고 이제 스코트가 승낙하기만 하면 끝인 상황이었는데 이때 가만히 있던 루나가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만 히이로. 왜 날 빼는 거야? 시바나 티파니보단 내가 더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많잖아!”
“저번 미션에서 입은 부상이 낫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 작전에 투입되고 싶으면 먼저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어놔.”
차가우리만큼 냉정한 히이로의 말에 루나는 발끈하여 그에게 뭐라 더 말하려고 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가던 이 둘의 싸움을 말린 건 다름 아닌 스코트였다.
“이런 미션에선 언제나 히이로의 판단이 맞다는 게 증명되어 있지. 이번에도 그를 믿고 그에게 맡겨보는 게 어때, 루나?”
“......쳇!”
스코트가 설득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듯 루나는 시바와 티파니, 특히 티파니 쪽을 더 매섭게 노려보고는 브리필 룸 밖으로 나갔다. 티파니도 눈치가 있는 사람인지라 루나의 눈초리에서 꽤 많은 걸 느껴 시바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보단 내가 미션에 투입된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신경 쓸 거 없어. 넌 네 역할에 충실하면 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 간에 말이지.”
그렇게 답한 시바는 메인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돌려 아직도 작은 창 상태로 떠있는 티탄즈의 신형 모빌슈트 설계도를 보았다. 그리고 뭔가 갈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리버를 오랫동안 보았다. 꽤 오랫동안......
플랜트가 모두 쟈프트의 소유이고 쟈프트는 공식적이 아닌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티탄즈를 배척하고 있기 때문에 티탄즈는 플랜트의 치안을 담당한다는 임무가 무색하게 플랜트 내에 작은 기지하나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에 관해서 티탄즈의 사령관 존 하이넬이 몇번이나 UN과 쟈프트에 항의했지만 UN는 미묘한 국제정세 때문에, 쟈프트는 티탄즈를 미워하는 자국내 국민 여론 때문에 그의 항의를 묵살하고 있었다.
그래서 티탄즈는 임시방편으로 플랜트가 건조되기 전 사람들이 거주했던 콜로니, 지구 연방과 쟈프트의 전쟁 때에는 주요 군사 거점기지로 쓰였던 몇몇 우주정거장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었다. 이중 지구 연방과 쟈프트가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제 18 군사 위성 기지 ‘헬레네’는 티탄즈의 사령부가 소재해있는 곳으로 티탄즈에서도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티탄즈 휘하 병력 대부분이 결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헬레네’는 단순한 군사 기지 이상의 티탄즈의 병사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나 오락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곳으로 어지간한 플랜트와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헬레네’ 내부의 한 술집. 술집의 이름은 디오니소스였지만 누구도 그렇게 긴 술집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냥 대충 줄여서 ‘디오’라고만 불렀지 ‘디오니소스’라고 제대로 발음해주는 병사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많은 티탄즈 병사들 중에 페이론 시키나트 소위는 예외였다. 그는 디오를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주는 몇 안되는 티탄즈 병사였다.
디오니소스의 바에서 혼자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페이에게 두 명의 남녀가 다가왔다. 한 명은 붉은색 머리카락에 도발적인 몸매, 그리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얼굴을 가진 여자였고 다른 한 명은 검은 머리에, 작지만 단단한 체구, 그리고 야비와 비열 사이를 오가는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 중 여자 쪽에서 먼저 페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기 들었어. 로아의 아지트를 박살냈다며?”
“......”
여자의 물음에 페이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잔에 담긴 마티니를 마셨고 잔을 내려놓는 페이의 눈에 그녀의 군복 상의에 새겨진 이름 ‘에레나 바우어’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에레나는 페이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자 그녀와 같이 온 남자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녀의 눈짓을 받은 남자-휴가 타가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건들건들거리며 페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로아의 아지트가 난민 수용소여서 민간인도 다수 있었다던데......”
“......그런 거엔 관심 없다.”
페이가 이런 대답을 할 거란 걸 예상했는지 에레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크흐흐...... 역시 냉혈한. 넌 몸속의 피까지 초저온일 거야.”
“......칭찬으로 듣지.”
그렇게 대답하며 페이는 남은 마티니를 전부 입에 털어넣었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술맛이 떨어졌기 때문에 대충 술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생각한 것이다. 막 주머니를 뒤져 술값을 내려던 페이는 타가야가 하는 말에 술값을 내려던 걸 멈추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페이를 멈추게 한 타가야의 말은 바로 이거였다.
“근데 소식 들었어? 신형 모빌슈트에 대한 거......”
티탄즈의 사령관 존 하이넬의 집무실.
호방하고 무인다운 기개가 넘치는 군인은 아니었지만 존 하이넬은 그런 군인에게 없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바로 눈빛. 존 하이넬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기에 체중도 많이 나가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마른 사람에게 붙는 이런저런 별명들이었지만 그런 별명을 그에게 붙인 사람은 그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구 연방과 쟈프트의 전쟁 때 냉혹한 전법으로 수많은 코디네이터 병사들을 지옥으로 내던져버린 그는 그때와 같은 싸늘한 눈빛을 한 채 자신의 데스크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 장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젊은 여성 장교의 이름은 힐데가르트 하이넬. 하이넬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자 아버지의 기질과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티탄즈의 핵심 간부였다. 어머니를 어려서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한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인이 되었는데 ‘역시 낼혈한 하이넬의 딸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섭고 냉혹한 전술을 많이 사용해 적군으로부터 ‘마녀’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모는 어머니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그녀에게 정신없이 구혼하는 자들이나 남모르게 사모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30대에 가까운 나이 28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여성의 평균 결혼 적령기는 25세임-그녀는 아직도 싱글이었다.
힐데는 잘생긴 얼굴에 한 점의 감정 변화도 없이 하이넬을 향해 서류가 담긴 결재파일을 내밀며 말했다.
“시키나트 소위의 소탕작전은 예상대로 처리했습니다. 이건 시키나트 소위가 작성한 경위서입니다.”
“그런가? 로아의 또 다른 아지트 수색은?”
힐데가 내민 파일을 받아들며 하이넬은 그녀에게 되물었고 힐데는 아버지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정보부에서 요원들을 풀어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곧 다른 아지트를 발견해낼 겁니다.”
“로아의 또 다른 아지트를 찾는 것도 좋지만 사냥감의 꼬리만 쫓아다녀선 사냥감을 잡을 수 없지. 머리를 날려야해.”
힐데가 아둔하지 않은 이상 하이넬의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로아의 리더 제임스 스코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를 잡아야 로아를 끝장낼 수 있지.”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힐데는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정보부에 제임스 스코트 수색에 관한 지시를 해놓겠습니다.”
힐데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하이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건담’들은 어떻게 되었나?”
“아, 그리버라는 모빌슈트를 말하는 거야? 꽤 괜찮아 보이던데?”
남들보다 신형 모빌슈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타가야는 에레나가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버도 굉장하지만 또 다른 모빌슈트가 더 대단한 녀석이야.”
“어째서지?”
대단한 녀석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긴 페이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타가야는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페이와 에레나에게 말했다.
“핵이 탑재된 모빌슈트거든.”
“핵? 뉴트론 재머 캔슬러를 말하는 건가?”
“크크큭...... 순진하긴. 핵은 동력으로 쓰는 것보다 무기로 쓸 때 더 위력이 넘치는 물건인 거 몰라?”
핵을 무기로 쓴다는 말에 페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늘 포커페이스인 페이가 표정이 바뀌자 타가야는 왠지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어 계속 떠벌려댔다.
“GAT-X146A. 아직 이름은 안정해졌지만 개발시 코드네임은 ‘뉴클리어’ 전용무기 A-바주카로 적에게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는 모빌슈트지. 이게 있으면 플랜트를 일격에 날려버리는 것도 꿈은 아니라고.”
“두 대 모두 롤 아웃되어 ‘헬레네’기지로 이송중입니다.”
신형 모빌슈트가 모두 ‘헬레네’기지로 이송중이라는 말에 하이넬은 마음을 놓았다. 마음이 놓이면서 그의 머릿속엔 세븐 크로닉스의 회장이자 위너 가의 가주인 카토르 라디스 위너를 만나서 핵병기를 사용하는 모빌슈트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위너 가의 가주 카토르와 단독으로 만난 하이넬은 자신이 원하는 모빌슈트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했고 카토르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지금에 와선 카토르의 조건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원하는 모빌슈트를 얻었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보부가 알아낸 첩보에는 세븐 크로닉스의 최신 모빌슈트가 로아에 흘러들어가는 거 같다며 위너 가와 로아가 손을 잡은 게 아니냐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마냥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힐데가르트 하이넬 대위.”
“예.”
“귀관은 지금 즉시 ‘헬레네’ 기지로 가게나. 가서 신형 모빌슈트가 제대로 도착했는지 모빌슈트의 결함이나 장비가 없는 것이 없는지 확실히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힐데는 거수경례를 붙이곤 그대로 뒤돌아서서 하이넬의 집무실을 나갔다. 힐데가 집무실을 나가자 하이넬은 곧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후후후...... 이걸로 우리 티탄즈에게 더욱 큰 힘이 생기겠지. 크크큭......”
“사령관이 어이없는 모빌슈트를 만들어냈군.”
두 잔째 마티니를 마시며 페이는 그렇게 말했다. 페이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에레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티탄즈에게 힘이 필요하단 소리지.”
타가야의 말에 페이는 세 잔째 마티니가 자신의 앞에 놓이는 걸 보고 물끄러미 잔에 담긴 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잔을 들더니 잔에 담긴 술을 한모금 마시곤 다시 잔을 바라보았다.
“힘...... 인가?”
투 비 컨티뉴드......

상처입고... 꺾이고... 쓰러졌지만... 난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